제목: 교회는 어떤 원칙을 따라 판단하는가?
본문: 고린도전서 7:1-24
<본문>
<결혼에 대하여 이르다>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해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게 그들의 몸을 음행에 쓰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고 권면한 뒤 결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이제 ‘너희가 쓴 문제’ 곧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편지를 보내 가르침을 구한 내용들에 대해 답변을 시작합니다.
문제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교회 안에 이원론적인 세계관의 영향으로 영혼이 구원받았으니 육체는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고 방종하던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교회 안에 영적인 유익만을 추구하면서 육체적인 욕구는 모두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금욕주의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혼한 부부를 포함해서 모든 성관계를 금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 사도는 독신으로 사는 것이 선호할만한 것이긴 하지만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남자든 여자든 결혼하여 배우자를 두라고 권면합니다. 고린도와 같이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모든 성적인 관계를 완전히 끊고 금욕을 하는 것은 오히려 음행으로 이어지기가 쉽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의한 권면입니다. 물론, 바울 사도는 결혼의 목적이 성욕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행이라는 죄의 유혹에 놓여있는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결혼이 주는 유익을 말한 것입니다.
결혼 제도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며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온전한 한 몸 됨의 기쁨을 누리고 연습할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부가 서로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뒤 하나님께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는 저주를 받았습니다(창 3:16). 부부가 서로를 섬기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기의 주장만을 하며 서로를 지배하려고 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죄인의 가정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가정에게 바울 사도는 부부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가 상대방의 권위 아래 있는 것과 같이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범위 안에서 서로가 음행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성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돕는 배필로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움으로 온전하게 하는 책임을 강조합니다(고전 7:1-4).
서로의 합의 하에 충분히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잠시 성적인 관계를 중단할 수는 있지만 절제력이 부족한 인간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고 음행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이 기간을 정해서 갖는 금욕의 기간 역시 허락될 뿐이지, 명령은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과 같이 성적인 욕구를 절제하는 은사를 받아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전념하고 독신이 누릴 수 있는 유익을 누리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모든 사람이 각기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고전 7:5-7).
바울 사도는 이어서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합니다. 먼저 결혼하지 않은 과부들을 향해서는 자신과 같이 결혼하지 않은 채 주를 섬기며 지내도 좋지만, 만약 성적인 욕구를 절제할 수 없고 음행의 유혹을 받는다면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다른 부분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했던 것을 고려할 때 과부라는 표현에는 아내를 잃은 남자들도 포함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미 결혼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부부가 서로 갈라서서 결혼을 깨뜨리지 말아야 하며, 만약 갈라섰다면 그대로 지내든지 아니면 이혼한 배우자와 다시 화합하라고 권면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부부는 한 몸을 이루며, 이혼한 배우자가 살아있는 동안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간음으로 정의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말은 자신의 개인적인 권면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라고 덧붙입니다(고전 7:8-11).
(마가복음 10:6-12)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11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바울 사도는 이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결혼한 경우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말씀을 직접 남기시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이 내용이 예수님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이 복음의 원리 하에 적용해서 가르치는 권면임을 밝힙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려면 먼저 이혼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복음을 믿지 않는 배우자가 이혼을 원한다면 얽매이지 않고 이혼할 수 있고 오히려 그것이 화평, 곧 평화를 누리는 방법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상황에서 믿지 않는 배우자가 계속해서 함께 살고 싶어 한다면 이혼을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결혼 생활을 지속해 가는 동안 믿지 않는 배우자가 믿는 배우자의 거룩한 삶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율법 중 정결법에 의하면, 부정한 사람에게 접촉하게 되면 그 접촉한 사람도 함께 부정해집니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혈루증을 앓는 부정한 여인을 만지셨을 때 병이 회복되었고 부정한 시체의 손을 잡고 일으키실 때 죽은 사람이 생명을 얻었습니다(막 5:25-29, 39-43). 부정함이 예수님께로 전이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거룩함이 부정한 자에게 전이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마찬가지로 부부가 함께 생활할 때 생명이 없는 배우자로 인해 성도가 부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은 성도가 어둠 속의 빛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의 가치를 따르는 믿지 않는 배우자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능력을 보게 될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혹 배우자가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될 일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자녀들도 거룩한 환경 속에서 양육을 받게 됩니다(고전 7:12-16).
이어 바울 사도는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은사를 가지고 각 사람을 불러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라고 ‘모든 교회’에 명령했습니다. 할례를 받았든지, 받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놓여있는 처지와 환경이 다릅니다. 인종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며 직업도 다르지만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동일한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기에 힘쓰면 됩니다. 노예 제도가 있던 시대에 종의 신분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고, 자유인이 될 기회를 얻게 된다면 그 나름대로 그 기회를 이용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종의 신분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죄와 사망, 사탄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자유인이며, 이 세상에서 자유인이라고 하더라도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며, 사람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고전 7:17-24).
<메시지>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낸 시기로부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로마가톨릭에서는 사제는 반드시 독신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고, 개신교에서는 목사가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원칙 혹은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게 전한 지침은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은사와 삶의 정황을 가지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그 어떤 정황 속에 있는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그리스도의 종으로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영광을 더 드러내고, 서로를 사랑으로 용납하고 섬기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행하라는 원칙만을 제시합니다.
주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다는 사실이 가정을 소홀히 하고 은밀하게 음행을 저지르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부부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근거삼아 강제적으로 배우자에게 헌신이나 성관계를 요구할 수 없고, 배우자가 성적인 필요로 괴로워하고 유혹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도 방관하는 태도도 옳지 않습니다. 이혼을 하거나 불신자와 결혼한 사람에 성도가 어떤 상황과 환경에 놓여있는지 이해도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이혼은 죄’, ‘불신자와의 결혼은 죄’라고 정죄해서도 안 되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면의 노력과 헌신을 다하지 않은 채 쉽게 이혼을 결정해버리는 것도 결코 허용될 수 없습니다. 마치 기숙사의 생활 수칙처럼 단순한 원칙들을 세워놓고 그 기준에 맞추어 모든 사람을 정죄하거나 칭찬하는 것은 간단하고 편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렇게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성도를 향해 바리새인과 같이 전통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가족 구성원 각 사람, 교회 안의 성도 각 사람을 향한 세밀한 관심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사랑과 긍휼의 태도로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을 고려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떤 판단이 진정으로 성경적이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것인지를 충분히 기도하며 고민하며 함께 자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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