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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말씀 묵상/고린도전서

교회를 세우는 은사 I 고린도전서 14장 1-19절 I 매일성경 큐티 말씀 묵상

by Inch_J 2020.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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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를 세우는 은사

본문: 고린도전서 14:1-19

 

<본문>

 

<방언과 예언>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해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게 은사는 서로를 섬김으로 교회를 세우도록 선물로 주어진 것이며 사랑이 없이는 행해지는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모든 은사들에 앞서 사랑을 추구하고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선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 성경을 해석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현재 교회의 상황과 성도의 삶에 적용해서 교훈하고 위로하고 권면하는 가르침을 포괄적으로 의미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성령의 영감을 받아 공식적으로 공동체를 가르쳤던 사람들을 ‘선지자’로 불렀습니다(고전 14:1).

 

  바울 사도는 교회를 세우는 데에 어떤 은사가 더 유용한가를 기준으로 예언과 방언을 비교합니다. 먼저 방언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을 권면하고 위로하여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신앙만을 세우지만,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를 세웁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가 모두 방언을 하는 것도 좋지만, 특별히 예언을 하기를 원합니다. 이미 말했듯이 방언은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교회를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예언을 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입니다(고전 14:2-5).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보다 알아들을 수 있는 예언이 더 귀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바울 사도가 만약 고린도교회 형제들에게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 나라, 교회의 문제들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주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으로만 말하면 아무 유익도 없을 것입니다. 피리를 불거나 거문고를 탈 때 소리가 분별되지 않으면 어떤 악기로 무엇을 연주하는 것인지 알 수 없고, 전쟁을 앞두고 나팔을 불어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도 전투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허공에 말하는 것과 같고,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외국인을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그 은사를 통해 교회가 풍성한 은혜를 누리기를 구하라고 권면합니다(고전 14:6-12).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그 말을 통역하는 은사를 얻어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영으로 기도하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으로 깨닫고 변화되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방언을 사용하여 영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도 유익하지만, 또 지성을 사용하여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송하여 스스로도 그 내용을 이해하고 교회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영으로 축복하고 감사한다고 해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멘’으로 답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은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믿음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방언의 은사의 유익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은사를 자랑하고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고린도교회의 모든 성도보다 방언을 더 많이 말합니다. 그러나 공적예배에서는 일만 마디 방언을 하는 것보다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고전 14:13-19).

 

 

<메시지>

 

  오늘날 은사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치유나 방언과 같은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방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야만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면, 은사에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교회에서 나타나는 혼란과 미신화를 경계하여,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완성된 계시의 말씀을 주셨으므로 사도시대에 초대교회에서 나타났던 은사들은 오늘날 중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방언이 성경에 기록된 방언의 은사가 맞는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합니다.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한 몸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현상이 나타나며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모두 이해하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은사를 사용하고 교회 안에 다양한 현상이 나타날 때 추구해야 할 분명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어떤 일이든 자기만족을 추구하고 자신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행해져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열심을 가지고 행하는 일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지, 서로를 섬김으로 교회를 세우는 방향으로 행해지고 있는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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