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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말씀 묵상/고린도전서

질서 있게 예배해야 하는 이유 I 고린도전서 14장 20-40절 I 매일성경 큐티 말씀 묵상

by Inch_J 2020.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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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질서 있게 예배해야 하는 이유

본문: 고린도전서 14:20-40

 

<본문>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차례를 따라 하라>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해설>

 

  바울 사도는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자랑하던 고린도교회에게 지혜에 있어서는 더 성숙해야 하며, 악을 저지르는 것은 어린 아이와 같이 멀리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 사도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율법의 해석자들로 보고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율법’이라고 표현하며 인용합니다(고전 14:20-21).

 

(이사야 28:11-12)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은 다른 방언 곧 외국어를 쓰는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셔도 이스라엘이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언은 성도의 믿음을 세우고 순종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표적이고, 예언은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만약 방언에 대한 이해가 없고 은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공적 예배에 참여해서 온 교회가 모여서 다들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본다면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성도들을 보고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온 교회가 다 예언을 한다면 복음을 모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말씀으로 책망과 판단을 받고 그들의 마음속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께 예배할 것입니다(고전 14:22-25).

 

  고린도교회의 예배는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는 예배였습니다. 그들이 모일 때는 각각 찬송시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고 방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그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 사도는 다시 한 번 은사를 사용하는 원리를 강조합니다. 모든 것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고전 14:26).

 

  바울 사도는 이제 공적 예배를 질서 있게 드리기 위해 어떻게 은사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방언을 할 때는 두 사람에서 최대 세 사람까지 차례대로 하고 한 사람은 그 방언을 통역해야 합니다. 만약 교회에 방언을 통역할 사람이 없다면 교회의 공적 예배에서는 잠잠하고, 집에 가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방언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언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두세 사람만 차례대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예언이 성령의 감동에 의한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이 예언을 하기 시작하면 먼저 하던 사람을 그치고 잠잠해야 합니다. 차례차례 질서 있게 예언의 은사가 행해질 때 모든 성도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이 예언하는 사람에게 권면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예언하는 사람들은 비이성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예언을 질서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기에 교회 안에서 질서 있게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고전 14:27-33).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게 공적 예배에서의 은사 사용에 대해 모든 성도들에 대해 가르치던 중 특별히 여성에 대해 언급합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라는 말을 여자가 공적 예배에서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이미 바울 사도는 앞서 여성들이 기도나 예언을 할 때 머리에 너울을 쓰라고 권면했기 때문입니다(고전 11:5). 문맥상 바울 사도는 여성들이 공적 예배에서 질서에 맞지 않는 말을 한 상황을 지적했을 텐데, 남편이 예언의 말씀을 할 때 질문을 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여 남편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예배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일에 대해서 언급한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성들은 남편이 예언을 할 때 율법에 따라 남편을 존중하고 그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태도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무언가를 배우려는 것이라면 교회에서 교회의 공적인 자리에서 할 것이 아니라 집에서 남편에게 물을 것을 권면합니다(고전 14:34-35).

 

  바울 사도는 한 사람씩 차례로 질서 있게 방언과 예언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계속해서 예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너희에게만 임했느냐?”라고 책망합니다. 예언을 행하는 선지자나 성령의 은사를 받아 방언을 행하는 사람은 이 편지의 내용을 주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주의 명령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가 예언을 사모하고 방언을 금하지는 말아야 하지만,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해야 한다고 결론을 맺습니다(고전 14:36-40).

 

 

<메시지>

 

  유력한 자들의 집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던 고린도교회 예배의 풍경은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절제와 질서가 필요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주님의 교회에 들어온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잘 듣고 깨달아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며, 둘째로 온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 온전히 세워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은 교회마다 예배 형식이 현저히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배의 요소도 다릅니다. 고린도교회와 같이 온 성도들이 초자연적인 은사와 신비한 체험만을 추구하고 서로의 은사를 과시하고자 하는 무질서한 예배의 모습도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예배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정이나 은사를 사모하는 마음도 없이 수동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모습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지 오늘 바울 사도가 쓴 편지의 목적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교회는 행동 하나하나, 가르침 하나하나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가르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여 함께 진리 위에 세워져 가야 합니다. 또, 성도 한 명, 한 명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모든 성도가 함께 더 분명하고 풍성하게 예수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듣고 배우고 믿고 누릴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서로를 존중과 배려함으로 질서 있고도 열정적인 예배가 드려지고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온 교회가 함께 자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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