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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말씀 묵상/고린도전서

교회와 사역자는 어떻게 서로를 섬겨야 하는가? I 고린도전서 9장 1-23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by Inch_J 2020.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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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와 사역자는 어떻게 서로를 섬겨야 하는가?

본문: 고린도전서 9:1-23

 

<본문>

 

<사도의 권리>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해설>

 

  바울 사도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를 이웃 사랑의 관점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뒤 자신이 사도로서 교회를 섬기고 사역하는 모습이 이웃 사랑의 원리에 따른 것임을 설명합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분명하게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선포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정당한 사도이며, 사도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것을 힘주어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세워진 고린도교회 자체가 바울이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는 도장과 같다고 논증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세워진 고린도교회는 바울을 마땅히 사도로 인정해야합니다(고전 9:1-2).

 

  바울 사도는 교회로부터 생계비를 받아서 생활하지 않고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해서 자신의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이 사도로서 자격이 없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자신에게도 사도로서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아서 먹고 마실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바울 사도는 게바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내를 데리고 다니며 가족들을 위한 생계 지원까지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직접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고전 9:3-6).

 

  자신의 사비를 투자해서 군복무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포도를 심고서 마땅히 자신이 먹어야 할 열매를 먹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양 떼를 길러놓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밭을 가는 사람이나 곡식을 터는 사람은 그 일을 통해 얻을 것을 기대하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도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신 25:4). 이 말은 소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밭을 갈고 난 소의 입에 망을 씌우고 곡식을 먹을 수 있게 하듯이 사역자들도 교회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고전 9:7-10).

 

  이처럼 일반적인 세상의 원리나 모세의 율법을 기준을 볼 때,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는 교회로부터 생계비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더구나 영적인 것을 즉 생명의 복음을 뿌리는 사역을 하고 재정적 지원을 받는 것은 결코 지나친 일이 아니라 마땅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고린도교회로부터 사례를 받을 권리가 있다면, 고린도교회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바울은 당연히 그런 권리가 있을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성전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성전으로부터 양식을 공급받고 제단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은 제물의 일부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보장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명백하게 명령하셨습니다(고전 9:11-14).

 

(마태복음 10:9-10)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많은 논증을 통해 자신에게 교회로부터 생계를 지원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 자발적으로 권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로부터 생계 지원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바울 사도는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가 자유인으로서 계약관계 안에서 복음을 전한다면 하나님께 대가를 기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 곧 노예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오히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를 입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자랑이자 기쁨이며 상급이라고 고백합니다(고전 9:15-18).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이지만, 유대인들을 만났을 때는 율법을 지키면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율법의 의무를 느끼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그들과 같이 행동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어떤 사람을 만나든 몇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얻도록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갔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위해 헌신하며 그 복음 안에 있는 복을 함께 누리고자 합니다(고전 9:19-23).

 

 

<메시지>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로부터 재정적인 후원을 받을 권리를 포기한 것은 결혼을 할 권리가 있음에도 주께 온전히 헌신하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거나, 우상의 제물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음에도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역자가 직접 일을 해서 자신의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면, 말씀을 충분히 연구하고 기도하며 교회를 돌아보는 데에 쓰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미 논증했듯이 사역자가 맡겨진 직분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도록 교회가 생활을 책임져 주는 것은 세상의 원리에서도 마땅한 일이며, 모세의 율법에도 명시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잘 이루어진다면 사역자에게나 교회에게나 유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는 왜 교회로부터 재정적인 공급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말했을까요? 먼저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혹여나 교회로부터 재정을 공급받는 것이 익숙해지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순회 선교사로서 사역하던 바울이 한 곳에 정착하고 안주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교회 성도들에게 물질적으로 의지한 상태가 되면 교인들의 눈치를 보고 복음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거나 그들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의 목회자들을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가 아닌 교회가 돈을 주고 고용한 일꾼으로 여기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가르치고 다스리는 직분에 대한 존중이 없이 기능적으로 목회자를 대합니다. 또한, 목회자에게 맡겨진 성경적인 직무보다, 교회가 추구하는 인간적인 요구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일들 요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결코 성경적으로 세워져갈 수 없고 시간이 갈수록 교회가 무너져 갈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문제들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지며 교회에 담대히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소명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오직 주와 주님의 교회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서라도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한편, 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사역자들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하고 교회를 견고하게 세워갈 수 있도록 전심으로 돕고, 물질적인 문제로 인해 사역이 방해받지 않도록 필요를 채우기에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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