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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말씀 묵상/고린도전서

교회 안의 ‘다름’은 은혜인가, 저주인가? I 고린도전서 1장 10-17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by Inch_J 2020.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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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 안의 ‘다름’은 은혜인가, 저주인가?

본문: 고린도전서 1:10-17

 

<본문>

 

<고린도 교회의 분쟁>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해설>

 

  고린도 교회에 인사를 전하고 하나님이 고린도교회에 주신 은혜에 감사한 바울은 주 안에서 ‘형제들’인 고린도교회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권면은 교회가 마음과 뜻을 하나로 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에베소의 부유한 여인이었던 글로에의 집안사람들로부터 고린도교회 안에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에베소에 있던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쓰게 됩니다(고전 1:10-11).

 

  고린도 지역의 사람들은 로마에 의해 BC 146년에 완전히 몰락했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퇴역 군인들과 하층민들을 중심으로 식민지로 세워졌습니다. 비록 초기 고린도의 사람들은 가난하고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었지만,  로마의 시민권을 얻고 교통의 중심지로서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고린도 사람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기 위한 경쟁과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과시에 몰두했습니다. 경쟁 관계 속에서 자신을 내세우고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고린도의 문화는 고린도 교회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바울, 아볼로, 게바(베드로), 심지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로 나뉘어 분쟁하고 있었습니다(고전 1:1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서 복음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는 성경적 지식이 풍부하고 뛰어난 수사학을 가진 사람으로 고린도 지역의 특성상 성도들의 인정을 받았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8:24, 26)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고린도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베드로를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가르침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을 강조했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고린도 교회에게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냐?”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갈라질 수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인해 구원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가 분열되어 갈등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것임을 가르치며 고린도교회를 책망하는 것입니다(고전 1:13).

 

  바울은 고린도 지역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듣고 믿은 회당장 그리스보와 가이오라는 사람, 바울을 문안하러 온 고린도 교회의 대표 중 한 명인 스테파노, 세 사람 외에는 세례를 베푼 기억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18: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고린도전서 16: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 외의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들이 세례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로 인해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바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면, 지금처럼 고린도교회가 분열되었을 때 바울에게 속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고 보내신 것은 세례를 주는 일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드러내기 위해 학문적인 깊이를 자랑하거나 현란한 수사학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고전 1:15-17).

 

 

<메시지>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온 교회가 서로를 섬김으로 온전하게 되도록 모든 성도들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십니다. 한 몸 된 교회가 원활하게 기능하도록 직분도 세우셨습니다. 교회의 목회자나 직분자, 혹은 교회 조직의 리더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교회가 주님의 뜻에 따라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다름’은 결코 비교, 경쟁,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 모든 생물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심으로 아름답고 풍성한 세상이 되었던 것처럼, 교회 안의 다름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합니다. 복음의 다양한 면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게 하는 ‘다름’의 은혜를 분열을 일으키는 저주로 변질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그 일을 통해 세력을 모아 힘을 행사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일이 단지 교회 안에서 좀 더 영향력 있고 인기 있는 사람으로 기분 좋게 신앙생활 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외에 다른 것을 드러내고 자랑하려는 욕심은 교회의 하나 됨을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온 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분명하고 풍성하게 드러내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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