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교회에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나려면
본문: 고린도전서 4:6-21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본문>
바울 사도는 자신이나 아볼로는 그리스도의 종이며 하나님의 비밀, 곧 예수 십자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냄 받은 사람들일 뿐임을 가르쳤습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 교회가 “기록된 말씀 곧 구약 성경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교훈을 배워서 서로를 깎아내리고 우월감을 갖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누가 너를 특별하게 구별했느냐? 네게 있는 것 중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며 고린도 교회가 자랑하는 것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누리고 자랑하는 모든 지식과 은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스스로를 높이며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고전 4:6-7).
바울 사도는 이미 구원이 완성된 사람들처럼 여기고 행동하는 고린도교회의 교만한 모습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이미 배부르고 부유합니다. 이미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왕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만약 정말 고린도 교회가 이미 왕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면, 자신도 그 왕 노릇에 동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아직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고전 4:8).
바울 사도는 스스로 왕처럼 여기며 배부름과 부유함에 취해 있는 고린도교회와 자신들의 모습을 대조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스스로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한 자로 여기고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직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지 않은 이 시기에 마치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하신 사람과 같이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경하는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서로 싸우다 죽어가는 검투사들처럼 모든 천사들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던 세상의 지혜로 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자랑하는 바울은 어리석고 약하고 비천한 사람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를 맞고 정처 없이 떠돌고 생계를 위해 직접 일을 합니다. 모욕을 당해도 축복하고, 박해를 받아도 참으며, 비방을 받아도 권면합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바울의 고백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교훈을 떠올리게 합니다(고전 4:9-13).
이어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의 모습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이유를 기록합니다. 고린도교회를 부끄럽게 하고 수치를 안겨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스승이 아닌 아버지의 사랑을 품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세워진 고린도교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낳은 영적인 자녀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버지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권면하듯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스승’은 당시 주인의 집의 어린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노예를 의미합니다. 고린도교회에 스승과 같은 많은 지도자들이 오고 가겠지만 바울과 고린도교회의 관계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만큼 더 큰 사랑과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바울은 영적인 아버지로서 영적인 자녀인 고린도교회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고린도교회가 본받아야 할 모습은 앞서 가르친 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높이고 경쟁하고 자랑하는 세상의 지혜를 버리고 겸손히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고전 4:14-16).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가 바울의 삶과 가르침을 다시 상기키시고 바울을 본받아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디모데를 파송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동일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낳은 영적 자녀라고 생각하는 고린도 교회가 디모데와 같이 신실하게 세워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 편에 편지를 보내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직접 고린도 교회를 방문해서 스스로를 높이고 자랑하는 교만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나는지를 알아보겠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내가 매를 가지고 가면 좋겠느냐?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가면 좋겠느냐?”라고 묻습니다(고전 4:17-21).
<메시지>
서로 경쟁하고 서로를 깎아내리며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자랑하는 분열된 모습이 우리 교회 안에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오늘날 교회에 대입해본다면, 크게 사업을 하며 재력이 있는 사람들, 전문적인 학위를 가진 고학력자들, 뛰어난 언변을 가진 사람들,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바울 사도는 교회를 향해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디모데를 보내 자신이 행한 일들과 이미 가르쳤던 복음을 다시 생각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분히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존재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정말 알고 믿었다면 그들은 결코 경쟁하며 자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을 이미 받았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기꺼이 고난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배부르고 부요한 것을 자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난과 희생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도 알았다면 교만하게 왕 노릇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 정도의 명제를 읊는 것만으로 복음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 나라 복음을 누군가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자녀와 함께 성경을 읽으며 그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 줄만한 지식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듣는 시간이나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기회를 소홀히 여깁니다. 변하지 않는 자신의 삶을 볼 때 “알지만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 “교리적인 지식은 충분하지만 구체적인 적용이 부족하다.” “원론적인 이야기는 그만하고 실제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때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복음을 충분히 모르거나 잊었거나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삶, 우리 교회 공동체에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할 때입니다. 겸손히 복음을 듣는 자리에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 앞에 압도되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자발적으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드러나는 교회가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매일성경 말씀 묵상 > 고린도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 안에서 권리와 이익을 지키려면 I 고린도전서 6장 1-11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0) | 2020.06.08 |
---|---|
교회는 어떻게 거룩함을 유지하는가? I 고린도전서 5장 1-13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0) | 2020.06.07 |
교만과 열등감 사이에서 헤맬 때 I 고린도전서 3장 16절 - 4장 5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0) | 2020.06.05 |
상 받을 일과 해를 입을 일 I 고린도전서 3장 1-15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0) | 2020.06.04 |
교회의 문제를 풀어가는 출발점 I 고린도전서 2장 1-16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0) | 2020.06.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