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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말씀 묵상/사도행전

서로 연결하여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 사도행전 20장 1-16절 / 매일성경 큐티 말씀 묵상

by Inch_J 2021.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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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로 연결하여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본문: 사도행전 20:1-16

 

<바울이 마게도냐와 헬라를 다니다>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유두고를 살리다>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바울이 에베소에서 2년 3개월 간 복음을 전하면서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마술과 관련된 서적들을 불태웠고, 아데미 여신의 신상과 모형 신전, 장신구를 만들어 팔던 은세공업자들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시작된 은세공업자들의 시위는 바울 일행을 위기에 빠뜨렸지만, 서기장이 바울 일행이 책망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문제가 있다고 재판장에서 총독 앞에서 적법하게 해결할 것을 권면하여 시위대가 해산했습니다. 바울은 가라앉은 뒤 에베소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행 20:1).

 

  바울은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고린도교회와 서신을 주고받았습니다. 먼저 AD 55년 봄에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고 디모데 편에 서신을 보냅니다. 고린도전서의 내용은 고린도교회가 당파를 나누어 분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록한 권면의 말과 고린도교회의 대표들이 가져온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록한 서신입니다. 그 후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바울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바울의 권위에 대항하는 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고린도에 방문했다가 큰 수치를 당합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로 돌아가 눈물로 쓴 엄중한 편지를 써서 디도를 통해 고린도교회에 보냅니다.

 

  위와 같은 바울 서신의 내용을 고려할 때, 바울 사도가 에베소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간 것은 눈물의 편지를 받은 고린도교회의 반응을 전해줄 디도를 만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에서 디도를 만났고, 바울은 디도를 통해 고린도교회가 회개하고, 바울을 대적한 사람을 치리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에 큰 위로를 받고 AD 55년 10월경에 기쁨으로 고린도후서 전반부(1-9장)를 기록합니다. 이 편지는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며 화해의 편지였습니다. 이후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에서 고린도교회에 온 거짓 사도들이 바울을 비방했고, 고린도 교회 안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AD 55년 겨울에서 56년 봄 사이에 고린도후서 후반부(10-13장)를 기록하여 고린도교회에 보냅니다. 또한, AD 56년 여름에는 일루리곤에서 복음을 전하고 사역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롬 15: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바울은 마케도니아의 여러 지방을 거치면서 이미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교회들을 방문하여 여러 가지 말로 제자들을 격려하고, 헬라 곧 고린도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AD 56년에서 5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고린도에서 3달 동안 머물다가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려고 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고린도에 머무르며 로마서를 집필했습니다(롬 15:22-29). 바울 사도는 겨울이 끝날 무렵, 헌금을 모은 여러 교회의 대표자들은 고린도에 모여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해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를 눈치 채고 마케도니아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배를 타기로 결정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함께 가려고 했던 대표자들은 먼저 배를 타고 드로아로 가서 바울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교회의 대표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마케도니아 교회들의 대표자는 부로의 아들로서 베뢰아 사람 소바더,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 세군도였고, 갈라디아 교회의 대표자는 디모데, 더베 사람 가이오였고, 아시아 교회들의 대표자는 아시아 사람 두기고, 드로비모였습니다. 이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바울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무교절(AD 57년 4월 7일-14일)이 지난 뒤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떠나 5일 만에 드로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7일 간 함께 지냈습니다(행 20:2-6).

 

  그 주의 첫날 곧 주일 저녁에 바울 일행은 드로아의 성도들과 함께 성찬과 함께 식사 교제를 했습니다. 바울은 다음 날 떠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밤이 깊도록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강론을 했습니다. 그들이 모인 위층 다락방에는 등불이 많이 켜져 있었습니다. 횃불의 연기로 인해 공기가 탁한 상황 속에서 바울의 강론이 길게 이어지자 창문에 걸터앉아 말씀을 듣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3층에서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일으켜보니 그 청년은 죽어 있었습니다. 바울이 다락방에서 내려가서 그 청년 위에 엎드려 끌어 안고 말했습니다. “소란을 피우지 마십시오. 아직 이 청년에게 생명이 붙어 있습니다.” 바울은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빵을 떼어서 교제의 식사를 하고 날이 새도록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그 살아난 청년을 집으로 데리고 왔고,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행 20:7-12).

 

  교회의 대표자들은 앞서 배를 타고 가서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앗소까지 걸어가고자 했기 때문에 그렇게 정한 것이었습니다. 앗소에서 바울을 만난 일행은 바울을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갔고, 거기서 떠나 다음날 기오 맞은편에 이르고 다음날 사모에 들렀다가 그 다음날 밀레도에 도착했습니다. 이런 행로를 택한 것은 바울이 아시아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에베소를 지나쳐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가능하면 오순절이 되기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서둘렀습니다(20:13-16).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성령의 역사를 따라 교회를 통해 퍼져나갔고, 각 교회는 여러 가지 박해와 내부적인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세워져갔습니다. 또한, 각 교회는 순회 사역자들을 통해 연결되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사역에 동참했습니다. 드로아 교회는 고된 노동을 마친 뒤 저녁 때 다시 모여 성찬과 식사 교제를 하고 날이 새도록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에 성찬을 행하고 말씀을 듣는 중 유두고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은 교회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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