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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말씀 묵상/고린도후서

교회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는가 I 고린도후서 1장 23절 - 2장 17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by Inch_J 2020.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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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는가

본문: 고린도후서 1:23-2:17

 

<본문>

 

1:23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2:1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근심하게 한 사람을 용서하라>

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그리스도의 향기>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해설>

 

  바울 사도는 마케도니아에 들렀다가 고린도교회로 오기로 했던 계획을 변경해서 먼저 고린도에 방문한 뒤 마케도니아에 갔다가 다시 고린도를 방문한 뒤 유대로 가기로 결정한 것이 경솔하게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린도교회에 은혜를 더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설명했습니다(고후 1:15-18). 바울 사도는 이제 두 번째로 계획을 변경한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바울 사도는 직접 고린도교회에 방문했을 때 대적들의 노골적인 반대로 인해 큰 수치와 고통을 당하고 고린도를 떠나 마케도니아에 갔다가 고린도교회에 다시 방문하지 않고 곧장 에베소로 돌아갔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모시고 생명을 걸고, 자신이 계획을 바꾸어 다시 고린도교회에 방문하지 않은 것은 고린도교회를 아끼기 때문이며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지 않고 그들의 기쁨을 돕는 자가 되기 위한 것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 사도가 바로 다시 고린도교회로 돌아가게 된다면, 명백하게 사도와 복음을 대적한 사람들을 사도의 권위로 치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를 아끼는 마음으로 그들이 스스로 회개하고 자신들 안에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을 치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직접 고린도교회의 믿음을 주관하여 종을 대하듯 좌지우지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들이 주님의 통치를 받아 이미 알고 믿는 복음 위에 서서 바르게 판단하고 스스로 회개하는 교회로 세워지기를 원했습니다(고후 1:23-24).

 

  바울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다시 가지 않은 마음을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바울 사도는 한번 근심 중에 고린도교회를 방문했다가 어려움을 겪은 바울 사도는 다시는 근심을 품은 채로 고린도교회에 방문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바울 사도를 기쁘게 할 유일한 사람들은 그가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렇기에 바울 사도는 근심이 가득한 채 고린도교회를 방문해서 고린도교회에게 근심을 안겨주고, 기쁨을 얻어야 할 교회로부터 근심을 얻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기쁨으로 고린도교회에 나아감으로 그들도 기쁨을 누리기를 원했고, 그들로부터 기쁨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곧장 에베소로 돌아가 직접 방문하는 대신 큰 눌림과 걱정의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 역시 고린도교회를 근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넘치는 사랑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고후 2:1-4).

 

  바울 사도는 이제 자신이 눈물로 쓴 편지를 읽은 뒤, 스스로 회개하고 공개적으로 바울의 권위와 복음을 대적한 사람들을 치리한 고린도교회에게 권징과 용서의 필요성을 함께 가르칩니다. 바울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공격했던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바울 한 사람을 근심하게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그가 전한 복음과 성경적 가르침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것이기에 결국 그가 전한 복음 위에 세워진 고린도교회 전체를 근심하게 하고 흔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교회의 치리 아래 합당한 징계를 받는 것이 합당했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교회는 공동체 안에 일어나는 죄를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되고, 특히 복음의 진리를 훼손하거나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다루고 합당한 권징을 행해야 합니다(고후 2:5-6).

 

  그러나 바울 사도는 한편으로 이제 죄를 범한 그 사람들을 용서하고 위로하여 사랑을 나타내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죄인을 책망하고 징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큰 근심과 슬픔으로 고통을 받게 하거나 공동체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고,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한 형제가 그 죄에 합당한 징계를 받고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교회는 그 사람에게 계속해서 죄인의 꼬리표를 달아놓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형제가 회개하고 돌아온 것으로 인해 기뻐하며 사랑으로 그를 다시 받아들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눈물의 편지에 순종하여 죄인을 징계한 고린도교회가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이 편지에도 순종하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고린도교회가 용서한 사람은 바울도 용서할 것이며, 그가 용서한 것은 고린도교회를 위해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고후 2:7-10).

 

 

  또한, 바울 사도는 이 모든 과정이 교회가 사탄의 계책에 속지 않기 위한 것임을 밝힙니다. 사탄은 교회 안에 거짓 교사들을 보내 복음을 왜곡시키고 교회가 복음을 떠나 온갖 죄를 저지르도록 유혹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여 한 몸 됨을 힘써 지키지 못하게 하고, 서로 정죄하도록 하여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가 철저한 회계와 권징을 통해 교회 안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분열되지 않도록 권면했습니다(고후 2:11).

 

  고린도교회를 향해 눈물의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보냈던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드로아로 갔습니다. 그러나 디도로부터 편지를 받은 고린도교회의 반응을 듣지 못한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와 디도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인해 드로아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돌아오는 디도를 좀 더 빨리 만나기 위해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 바울 사도는 결국 마케도니아에서 디도를 만났고, 디도로부터 고린도교회가 회개하고 바울의 대적자를 치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를 받고 기뻐하게 되었습니다(고후 2:12-13).

 

(고후 7:5-7)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그렇기에 바울 사도는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교회를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돌립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사탄을 결박하고 모든 원수로부터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에 세우신 교회를 승리로 이끄셔서, 교회를 통해 세상에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곧 복음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게 하십니다. 주님의 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생명의 구원을 얻고,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은 영원한 사망의 형벌 가운데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영원한 생명과 사망을 결정짓는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세우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라고 탄식하며, 이 사명이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 자격 없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이 영광스럽고 중대한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교회가 포도주에 물을 탄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받은 순전한 말씀, 그 십자가 복음을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선포해야 한다고 엄중하게 말합니다(고후 2:14-17).

 

 

<메시지>

 

  하나님의 백성, 곧 교회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죽으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 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 십자가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아 교회 공동체의 회원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한 가족을 이루게 하신 교회가 거룩한 공동체로 세워질 수 있도록 서로를 지키며, 함께 영적 전쟁을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피차 가르치고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온 교회가 이 책임을 충실히 감당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복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세상에 존재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선포할 때, 세상은 그 복음 앞에 서게 되고 영원한 생명과 사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혼잡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유익을 얻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복음을 변질시키거나 이용하는 것은 바울 사도조차 “누가 이 일을 감당하랴!”라고 탄식했던 중대한 사명을 함부로 대하는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충실하게 살펴서 예수 그리스도의 순전한 복음을 바르게 전할 뿐 아니라, 그 복음에 순종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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