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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말씀 묵상/고린도후서

목회자와 성도를 판단하는 기준 I 고린도후서 12장 1-13절 I 매일성경 큐티 말씀 묵상

by Inch_J 202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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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쌓여-있는-성경책

 

제목: 목회자와 성도를 판단하는 기준

본문: 고린도후서 12:1-13

 

<본문>

 

<주께서 보여 주신 환상과 계시>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린도 교회의 일을 염려하다>

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해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안에 들어와 자신을 비방하는 거짓 교사들로부터 사도로서 자신의 권위와 복음을 변호하기 위해 어리석고 무익하지만 자신을 자랑합니다. 먼저 바울 사도는 유대로부터 온 거짓 교사들이 자랑하는 유대인으로서의 혈통과 신분에 있어 결코 부족함이 없음을 밝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복음을 위해 당한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난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의 영광과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바울 사도의 강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약함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선포합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이어서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자신들의 영적 체험과 은사를 자랑하고 있는 고린도교회에게 자신이 경험한 주의 환상과 계시에 대해 자랑합니다. 바울 사도가 본 환상과 계시는 그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역사입니다. 바울 사도는 영적인 영역에 있어서도 자신의 체험을 자랑하는 것을 무익한 것으로 여기지만, 역시 거짓 사도들에 대항하고 사도로서의 정당한 권위를 세워 복음을 지키기 위해 부득불 자랑합니다(고후 12:1).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처럼 자신이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던 경험을 기록합니다. 바울 사도가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부득불 자랑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을 직접적으로 자랑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의 용례에서 하늘은 첫째,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바라보는 일반적인 의미의 하늘을 의미합니다(행 1:9-10). 둘째, 모든 천체를 포함한 온 우주를 의미합니다(창 1:14). 셋째, 물리적 공간으로서 두 하늘을 넘어서 하나님이 계신 곳을 의미합니다(벧전 3:22).

 

(행 1:9-10)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창 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벧전 3: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바울 사도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직접 보고 왔다는 고백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는 첨언으로 환상을 보게 된 상황과 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환상으로 계시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강조합니다. 셋째 하늘은 낙원이었고 그곳에서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본 구체적인 환상의 내용이나 낙원에서 들은 말씀의 내용도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의 경험이 거짓이 아닌 참된 증언이기에 자랑을 하더라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만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누군가가 바울 사도는 그가 경험한 영적인 체험으로 인해 대단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영적인 체험을 자신이 전하는 가르침의 내용이나 자신의 권위를 삼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고후 12:2-6).

 

  바울 사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계시를 받았고 지극히 큰 영적 체험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만성적인 신체적인 질병, 그를 대적했던 사람들, 육체적이거나 영적인 유혹이었을 것으로 볼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육체의 가시가 무엇이었는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가 교만하여 자신을 자랑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고통스러운 가시가 사라지게 해달라고 세 번을 간구했지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왜냐하면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눈에 보이는 성취와 성공을 중요시했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연약함을 통해 역사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온갖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함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약한 그 때가 그리스도의 능력이 강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고후 12:7-10).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 앞에 스스로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자가 된 것은 그가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사도를 신뢰하고 변호했어야 할 고린도교인들이 오히려 거짓 교사들의 말에 현혹되어 그의 권위를 의심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기에 억지로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스스로 지극히 크다고 자랑하는 거짓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고, 고린도교회는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고린도교회를 세운 바울 사도를 칭찬해야 마땅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교회를 섬기며 모든 일에 인내하고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은 그가 사도라는 표가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와 비해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를 위해 덜 한 일은 없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설교자로서 교회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는 것은 모든 사도의 권리지만, 만일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공평하지 못한 일이고 문제가 된다면 용서해달라고 말합니다(고후 12:11-13).

 

 

<메시지>

 

  고린도교회가 사도이자 목회자였던 바울 사도를 판단했던 기준은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도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출신과 배경, 유명한 사람들의 추천, 화려한 언변과 논리력,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학위나 성과, 신비한 영적 체험이나 능력, 신체적 건강과 외모 등입니다. 이런 기준은 목회자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런 기준으로 자신을 자랑하거나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거듭 말합니다. 교회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분명하고 온전하게 선포되는가?”, “자신의 능력과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드러나는가?”라고 가르칩니다. 세상의 기준을 기독교 문화와 성경적 용어로 포장해서 그대로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기준으로 분별할 수 있는 건강한 성경적 교회들이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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