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성경 말씀 묵상/마가복음

그리스도와 함께 죽든지, 그리스도를 죽이든지 / 마가복음 11장 1-19절 /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by Inch_J 2020. 3. 26.
반응형

썸네일-십자가-아래-앉은-사람

 

제목: 그리스도와 함께 죽든지, 그리스도를 죽이든지

본문: 마가복음 11:1-19

 

<본문>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다(마 21:1-11눅 19:28-40요 12:12-19)>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1)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무화과나무에게 이르시다(마 21:18-19)>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마 21:12-17눅 19:45-48요 2:13-22)>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해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이 제자 두 명을 보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그곳에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그 나귀를 풀어서 끌고 와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냐고 묻는다면 주가 쓰시겠다고 해라. 그러면 즉시 이리로 보낼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는 특별한 용도로 구별되어 사용할 때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동물을 사용하십니다(민 19:2; 신 21:3; 삼상 6:7).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준비하게 하십니다. 스가랴서는 공의로 다스리고 구원을 베풀어 주실 왕이신 메시아가 나귀 새끼를 탄 겸손한 모습으로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고 전쟁을 그치게 하시며 화평을 전하실 분입니다(슥 9:9).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는 메시아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주’라고 표현하시지 않기에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라.”는 의미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미리 보시고 권위 있게 나귀를 취하여 쓰시는 예수님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보니 정말로 나귀 새끼가 거리의 문 앞에 매여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나귀를 맨 끈을 풀 때 거기 서 있던 사람들이 왜 나귀 새끼들을 푸느냐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말하니 나귀를 가져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제자들은 나귀 새끼를 예수님께로 끌고 와서 안장도 없는 나귀의 등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었고 예수님은 그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가실 때 예수님을 따라왔던 많은 무리들이 자신의 겉옷을 길에 폈고 어떤 사람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폈습니다. 겉옷을 벗어 발밑에 깔아주는 일은 예후가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 무리들이 했던 행동입니다(왕하 9:12-13).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호산나 찬양하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양하라. 다가올 우리 조상 다윗의 조상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호산나’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시 118:25-26). 무리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왕국을 회복할 그리스도로 알고 환호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둘러보셨습니다. 유대인의 신앙의 중심인 성전의 모습을 통해 주님은 그들의 신앙의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임하신 것은 말라기 선지자의 글의 성취이기도 합니다(말 3:1-2). 예수님은 날이 저물어 열두 제자를 데리고 다시 베다니로 나가셨습니다.

 

 

  다음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 예수님이 배가 고프셨습니다. 예수님이 멀리서 잎사귀가 피어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에 열매가 있을까 해서 가까이 가보셨습니다. 그러나 무화과가 열릴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잎사귀만 있고 무화과는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라고 저주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잎사귀가 마르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을 상징합니다(렘 8:13; 호 9:10, 16; 욜 1:7; 미 7:1-3). 잎만 무성하고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겉으로 보이는 종교적인 형식은 유지되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타락하여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음에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 유대인들과 성전을 향한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오는 사람들은 성전까지 제물을 끌고 오는 것이 어려울 뿐 아니라 가져오는 동안 제물에 흠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에 제물을 파는 상인들에게 사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 20세 이상의 유대인 남자들은 일 년에 반 세겔을 내야 했는데, 성전에는 여러 나라의 화폐를 성전세로 사용할 수 있는 두로의 세겔 화폐로 교환해주는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매매하는 자들과 환전상들은 성전을 책임지고 있는 제사장들과 관리들과 결탁하여 높은 수수료를 받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제물인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미 감람산에 시장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성전 뜰에서 매매를 하기 시작한 것은 이방인들의 기도와 예배를 무시하고 배제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물건을 가지고 성전을 지름길처럼 가로질러 다니는 것도 금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행하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느냐(사 56:7) 너희들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렘 7: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이 이스라엘만의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곧 만민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나아오게 되고 하나님의 집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불리게 될 것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은 본질적인 의미와 역할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배타적으로 구분하는 하는 민족주의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부패하고 왜곡된 방법으로 성전을 운영하면서도 희생제사와 같은 종교 의식으로 악한 모습을 숨기고 정당화하는 사람들에게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내쫓으시고 성전 제사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시장을 둘러엎으신 것은 이미 총체적으로 타락한 성전에 임할 심판을 상징합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기는 것을 보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두려운 마음에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의 타락을 지적하신 것은 성전을 책임지고 있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권위와 이를 통해 취하던 이익을 위협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지>

 

  나귀 새끼를 타고 묵묵히 성전을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주변에는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로마에 대한 반란을 일으켜 다윗의 왕국을 세울 것을 기대하며 환호하는 무리들, 성전을 책임지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권력한 예루살렘의 상인들에 둘러싸여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환호하는 군중들 속에서는 침묵하셨지만 부패한 성전 안에서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상을 둘러엎으시며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이 공의로우시고 겸손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교만함과 이기심, 추악한 욕망들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형식적인 종교생활로 우리의 죄를 덮어놓고 계속 부패한 이익을 좇으려면 그리스도를 죽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없애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들,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주님의 교회는 이 모든 옛 사람의 모습들을 내쫓고 둘러엎어야만 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