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성경 말씀 묵상/사도행전

아가야 총독 갈리오의 판결 / 사도행전 18장 12-23절 / 매일성경 큐티 말씀 묵상

by Inch_J 2021. 6. 21.
반응형

 

제목: 고린도에서 로마 총독을 통해 교회를 지키시다.

본문: 사도행전 18:12-23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바울이 안디옥으로 내려가다>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바울 사도는 2차 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 1년 6개월을 머물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어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아가야의 새로운 총독이 부임했을 때를 이용해 바울을 추방하려고 했습니다. 이때는 AD 51년 초여름으로 추정됩니다. ‘아가야’는 마케도니아와 모에시아를 묶은 지역으로서 로마가 총독이 다스리던 지방의 이름입니다.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고, 바울을 끌고 가서 총독의 재판석의 단 위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종교적인 이유로 사람들이 로마법에 어긋나는 삶을 살도록 선동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는 로마로부터 종교적 활동을 인정받고 로마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었지만, 로마 시민을 새로운 종교로 개종시키는 일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유대교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바울이 전하는 새로운 종교를 전파하는 일이 로마 총독에 의해 금지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바울의 선교는 로마법에 의해 제재를 받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은 입을 열어 자신을 변호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총독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여, 만약 이 일이 범죄나 악한 행동에 관한 것이면 내가 여러분의 고발을 들어주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가르침, 행동이 아닌 명칭, 여러분이 따르는 모세의 율법에 관련된 것이라면, 여러분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나는 이런 일에 재판장 노릇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갈리오는 유대인들을 법정에서 쫓아냈습니다. 갈리오는 이 문제가 유대교 안에서 서로 다른 관점으로 율법을 해석한 가르침이 충돌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자 법정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소송에 실패해서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법적 권리를 보장받게 만든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때렸습니다. 이때 소스데네를 때린 사람은 로마 안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을 가진 로마 시민들을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갈리오는 이 일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약 10년 간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동안 로마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판례가 되었습니다. 또한, 고린도교회는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황제 숭배, 군 복무와 같은 의무를 면제받았습니다(18:13-17).

 

  갈리오의 판결은 AD 51-52년 여름, 혹은 초겨울에 내려졌을 것이며, 바울은 그 해 겨울 동안 상당한 기간 동안 고린도에서 더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유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잠시 방문하려고 고린도 교회의 형제들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배를 타고 수리아로 떠났습니다. 바울은 전에 서원한 것이 있어서 서원한 기간 동안 머리를 길렀습니다. 누가는 이 서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을 알 수는 없습니다. 바울이 머리를 깎았다는 언급은 나실인의 서약을 떠올리게 합니다.

 

(6:18) 자기의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자기의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나실인의 서약을 한 사람은 자발적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머리를 기르며 철저히 정결한 생활을 해야 했고, 서약한 기간이 끝났을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머리를 깎고 화목 제물을 태우는 불에 머리카락을 넣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는 동안 지켜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서원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선교 여행을 하던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고, 이후 에베소를 거쳐 안디옥에 가기 전, 예루살렘에 들렀을 때 서원과 관련된 의식을 마쳤을 것입니다(행 18:18).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은 바울은 배를 타고, 성령이 막으셔서 가지 못했던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에베소도 소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상업도시였고, 아시아 지방의 행정부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 에베소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해서 살아가고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에베소에 머물며, 천막 사업을 할 수 있으면서도 에베소 선교의 거점이 될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했고, 바울은 그 기간에 에베소 지역의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토론을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에베소 회당에서 바울과 대화했던 여러 사람들은 바울이 더 오래 있기를 원했지만, 예루살렘으로 가서 서원을 마무리해고, 안디옥 교회에 선교 사역을 보고하기 위해 그들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고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의 뜻이면, 나는 여러분에게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라고 말한 뒤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 도착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교회에 문안한 뒤 안디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떠나 3차 전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방, 곧 그가 첫 번째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던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을 두루 다니면서 모든 제자들을 격려하여 굳건하게 세웠습니다(행 18:19-23).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던 하나님은 바울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법적으로 막으려는 유대인들의 시도로부터 바울을 지켜주셨습니다. 총독 갈리오 는 바울이 변론하기도 전에 바울의 복음 전파를 로마법으로 보호 받고 있는 유대교의 종교 활동 중 하나로 규정했고, 이 판례를 통해 주님의 교회는 로마의 법적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핍박하려는 시도나 교회에게 닥친 위기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교회를 오히려 든든히 세우시기도 하시고, 복음이 전파되게 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반응형

댓글